[25년 제마] 첫번째 풀코스 마라톤 회고
2025년 11월 2일, 일요일. 첫 풀코스를 완주하고 남기는 기록.
- 준비
- 전날은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했다. 쌀밥 위주로 먹고 간식도 감자와 바나나를 먹었다. 당일 아침에는 계란죽을 먹었다.
- 중간에 화장실을 가게 될까봐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 덕분에 주유소가 화장실 의무 개방인 것도 알게 되었다. 당일 아침에 좀 일찍 도착해서 화장실을 갔는데 대변줄 소변줄이 따로 있었다. 20분을 기다려 화장실을 갔는데 해결을 못해서 출발 직전까지 불안해했는데, 다행히 배가 아프거나 화장실이 가고싶진 않았다.
- 구간별 후기
- 페이스를 엄청 잘 관리하겠단 생각은 없었다. 완주가 목표기도 했고, 그 정도 거리를 뛰어본 적이 없어서 감이 없었다. 그리고 발목이 아팠어서 마지막에 훈련을 많이 못한 것이 걸렸다. 그래도 사람들 응원도 있고 하는 김에 기록도 잘 나오면 좋으니 목표를 430으로 잡고 페이스 표를 적어서 갔다. 440 정도 나오길 기대했다.
- 10키로까지는 천천히 뛴다고 생각했는데 6분 20초 정도 페이스가 나왔다. 540으로 20키로를 뛰어봤어서 적당하다고 생각했고, 같이 뛰는 사람이나 응원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서 신이 났다. 응원 소리를 포함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음악도 안 들었다.
- 21키로 정도부터 갑자기 힘든가? 생각이 들었다. 이직 21키로나 더 뛰어야된다고? 사실 안 쉬고 최장거리를 뛰어본건 21키로가 최고였는데, 이 때문에 약간의 심리적인 압박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 앞 그룹의 440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은 직후였다. 지히차도를 통과하는 오르막이었는데, 440도 못하면 좀 부끄러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진짜 더 못 미나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속도를 내봤는데, 다리가 움직이길래 그렇게 440페메를 내 뒤에 두고 25키로까지 갔다.
- 25키로 지점부터 오르막이 꽤 있었는데, 걷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걷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이상하게 오르막만 마주하면 걷는 사람이 더 생겨서인지 오히려 더 뛰게 되었다. 약간 더 취한 사람 보면 깨듯이 나보다 힘든 사람을 봐서 그런듯.
- 이쯤부터 한 번 쉬면 다시 뛰기 얼마나 힘든지 알아서 정신과 몸이 계속 부딪혔다. 그래서 급수대에서도 절대 안 멈추려고 했고, 파스도 뿌리면 좋겠지만 멈추고 싶어서 그런 생각하는게 아닐까 싶어서 전부 지나쳤다. 소영이를 30키로에 만나기로 해서 적어도 이때까진 걷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 잠실대교 건너는데 어떤 아저씨가 30키로부터는 팔로 가는거라고 팔을 힘차게 치라고 했다. 이 말이 꽤나 도움이 됐던 것이, 나중엔 팔이라도 치니까 앞으로 가지긴 했다.
- 카카오맵으로 위치 공유를 하고 있었는데, 소영이를 만날 때 되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듣기로는 만날때 엄청 힘든 표정일줄 알았는데 밝은 표정이라 다행이었다고. 이때 변명일지라도 잠깐 파스를 뿌려서 멈춰야겠다 생각했다. 파스는 별 효과가 없었고, 여전히 12키로가 남았다는 생각에 갑자기 힘들어졌다.
- 30키로가 흔히 벽이라고 표현하던데, 막상 돌파하니 그 정도는 아닌데 싶었다. 그렇지만 힘든 건 맞았기에, 이제부턴 즐기기 보다 나와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에어팟을 끼고 노캔을 켜서 미리 만들어둔 플리를 틀고 앞사람만 보며 뛰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35키로 급수대까진 쉬지 않고 가자는 생각으로.
- 5키로 지점마다 내 모습을 짧게 영상으로 남겼다. 난 스스로 최면 걸기를 좋아해서 100번도 할 수 있다,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되뇌었는데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5키로 때는 사람이 많아서 좀 부끄러웠는데, 10키로부터는 ‘I can do this all day’ 를 같이 외쳤다. 근데 35키로부터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I can do this’ 로 바꿨다.. 이쯤 에어팟도 배터리 문제로 꺼졌다.
- 36키로에는 뛰다 앞으로 넘어진 사람도 있었다. 내리막이 좀 있었는데, 가속을 붙일 여력이 없었다. 뛰었다 멈췄다 걸었다 하면서 1키로씩 목표를 잡고 갔으며, 멈출 때마다 햄스트링 쪽 스트레칭을 했다. 발목을 살짝 돌려봤는데,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30키로 쯤부턴 남은 거리를 최악의 페이스로 7분을 잡고 완주했을 때 기록을 생각하며 뛰었는데, 36키로 부터는 그런 생각도 안하게 되었다.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만 들었다.
- 1키로도 한번에 못 뛰게 되었고, 38키로 지점에서 파스를 뿌리고 오르막을 올랐다. 이땐 신기하게 평지가 나올때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하면 되나 싶은 생각도 잠시 다음 지하차도 오르막에서는 도저히 뛸 수 없어 걸었다. 15분까지 느려진 페이스를 보고 5시간 안에는 들어가기 위해 발을 또 굴렸다.
- 40키로를 돌파 했을 때, 2키로가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걷다가 스트레칭하고 뛰고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41키로에 도달했고, 마지막 좌회전만 남겨둔 내리막이었다. 직전 주말에 자전거를 타고 코스를 미리 와봤어서 알고 있었다.
- 41키로에서 마지막 급수를 하고 쉬지 않고 들어가겠단 결심을 했고, 응원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는 마지막 피니시 라인까지의 주로에서는 멈출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게 통과하자마자 완주 문자가 왔다.
- 그 외
- 끝나자마자 다리가 고장남을 알았다. 스쿼트 10000개는 한듯한 가시지 않는 근육통과 관절 통증이 와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소영이가 나를 위해 여기까지 와줬는데, 차마 혼자 앉아있을 수는 없었어서 같이 쉬었다가 걷고 사진 찍고 했다.
- 집 가서 진단해보니 발목이 너무 부었고, 이 때문에 발을 디딜때마다 너무 아파서 걷기가 힘들었다. 근육통은 시간 지나면 금방 낫는다는 걸 아는데, 관절은 얼마나 걸릴지 감이 안와서 걱정이 됐다. 다행히 병원에서 골절은 아니라, 불편한 깁스 (하면 좋지만) 대신 주사와 약, 냉찜질로 관리하라고 했다.
- 당일에 사우나를 가서 온찜질을 했는데, 몸이 풀어지는 느낌은 너무 좋았지만 붓기를 빼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찜질도 이미 땀을 많이 흘렸어서 필요성을 많이 못 느꼈다. 나와서 확인해보니 온찜질이 염증을 악화시킬 수 있어서 비추천한다는데… 나중엔 더 찾아보고 가야겠다.
- 다행히 주사를 맞고 나니, 다음날 통증이 엄청 줄었다. 진통제의 영향일 것 같아서 아껴쓰긴 해야겠다. 아버지가 이틀 내내 태워주셨다. 월요일은 집 갈때 계단을 못 가겠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녔다.
- 주사 맞고 이틀 정도 지나니 완전히 괜찮아졌다.
- 입술이 텄다. 바지랑 쓸릴까봐 허리에 붙여둔 밴드 자국이 보일 정도로 상처가 생겼다.
- 응원해주는 사람이 정말 많다. 끊이지 않고 있다. 덕분에 포기의 순간에서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었다. 배번에 있는 이름 덕분에 나를 위한 응원이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응원하는 사람으로 마라톤을 참가하는 것도 정말 좋은 경험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 사진과 영상을 찍어준 사람도 엄청 많았다. 사진은 셀카만 찍으면 찾아주는 서비스가 있었고, 영상은 유투브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처음 본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사진과 영상을 찍어주다니 정말 고마웠다.